경험 설명:
나는 Art Bell의 팬이다. 그리고 매주 길에서 운전하면서 방송을 듣는다. 나는 당신이 게스트였을 때 그 쇼를 매우 즐겁게 들었고 그것은 내
경험에 반영하게 만들었다. 나는 무서운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반대로, 우리가 영적인 경험을 찾는 인간이 아님을 깨닫게 해줬다.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강력한 영적 존재이다.
I am an Art Bell fan and listen to him while driving over the road every week. I
enjoyed the show where you were a guest and it made me reflect on my experience.
I did not have a scary experience, to the contrary, it made me realize that we
are not human beings searching for a spiritual experience; we are powerful
spiritual beings having a human experience...
1992년 6월 나는 결혼한지 20년이 되었다. 나는 나의 고등학교적 애인과 결혼했었고 그녀를 진실로 사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은 장님이다
라고 한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사실이다. 나는 그때 당시는 몰랐다. 하지만 내 아내는 그녀가 인생 초기
경험했고 결코 고칠 수 없는 것들때문에 다중인격을 발달시킨 초기단계에 있었다.
In June of 1992 I had been married for 20 years. I had married my High School
sweetheart and I truly loved her, but they say that love is blind. I do not know
who "they" are, but it is true. I did not know at the time, but my wife was in
the early stages of developing multiple personalities due to things that she
experienced early in life and never dealt with.
나는 내자신이 굉장히 학대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결과로, 나는 나도 모르게 진정 비참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나를
눈멀게 해 내가 무슨 일을 겪고있는지 모르게 했다. 나는 관계속에서 스트레스로 가득찬 시간을 겪었다. 그녀의 다중인경장애를 조절할 수 없었고
일어나는 모든 일에 나 자신을 비난했고 그녀에게 감사했다. 나는 내가 없으면 그녀와 나의 두 딸이 더 잘 될 거라고 생가가했다. 나는 내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하나님께 내가 있는 곳, 이 지구의 지옥에서부터 나를 데려가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그의
가르침에서 약속한대로 죽음의 평안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했다.
I had found myself in an extremely abusive relationship, as a result, and was
unknowingly truly miserable, but my love for her blinded me for what I was going
through. I was going through a stressful time within the relationship not being
able to adjust to her multiple personalities and blamed myself for all that was
going on and thanks to her, thought she and my two daughters would be better off
without me. I had all that I could take and started praying to God for him to
take me from this hell on earth I had found myself in, and to allow the peace of
death that Christ had promised within his teachings.
당신은 "당신이 기도하는 것을 조심해라. 당신의 기도가 응답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들었을지 모른다. 내 경우엔 이 말은 진실이다.
나는 단지 3개월간 그런 기도를 드렸고 응답을 받았다...
You have heard the old saying that "beware of what you pray for because your
prayers may be answered"? In my case, it was the truth. It took him only three
months of such prayers for him to answer them...
나는 어느날 저녁 여행에서 돌아왔다. 저녁을 먹은 후, 매우 심하게 가슴이 쓰린 것을 경험했다. 14살이던 내 큰 딸은 내 안색이 너무
창백하다고 말하고 내가 병원에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그 다음 내가 기억하는 것은 내 아내가 시류에 뛰어들었다. 나는 침대에 가서 아내에게 아침
7시에 깨워달라고 하려던 참이었다. 다음날 아침 그녀가 일하러갈 준비를 하려할 때, 그 다음날 여행준비를 하기 위해 나는 집에서 한 숨도 자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나를 응급실에서 체크하도록 하지 않은채 말이다.
I came in from a trip one evening and, after eating supper, experienced
tremendous heartburn. My oldest daughter, then fourteen, told me that my color
was too pale and insisted that I go to the hospital! Then the next thing I knew,
my wife jumped on the bandwagon. I had planned to go to bed that evening and
have my wife wake me up at 7 am. The next morning, when she was going to get
ready for work, however I soon realized that I was not going to get any sleep at
home, to be ready for a trip the next day, without allowing them to take me to
the emergency room to be checked out.
똑같은 저녁 늦게, 나는 응급실에 갔다. 의사가 다음날 아침 테스트하겠다고 알려줬다. 나는 아침에 테스트를 받아야하고 정말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숫적으로 압도당했고,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됐다.
Late that same evening I went through the emergency room and the doctor informed
me that he was admitting me for tests to be run the next morning. I told him
that I had to go on a run in the morning and really felt fine. Well, it was
clear that I was out numbered and gave in to his request.
나는 새벽 1시쯤 개인방으로 옮겨졌다. 나는 모든 시련에 대해 화가났다. 그리고 TV를 보기 시작했다. 새벽 3시쯤 수간호원이 들어와 TV를
끄고 아침일찍 테스트를 해야하니까 내가 쉬어야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나에게 심장모니터기를 설치하고 자기들이 매우 바쁘고, 누구든 간과하는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불을 끄고 나에게 잠을 자라고 말했다. 나는 그냥 포기했고,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잠을 잤다. 나는
내가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탈진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알았고,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명백하다.
I was taken to a private room around 1 am. That morning. I was upset about the
whole ordeal and just started watching TV. At 3am., the head nurse walked in and
gave me hell for staying up and turned off my TV telling me that they would be
in early morning to run test and that I needed my rest. She also put a heart
monitor on me saying that they were very busy and did not want to take the
chance of overlooking anyone, then turned out the lights and told me to go to
sleep. I just gave up and decided to go ahead and go to sleep. I knew I was
headed for burnout, physically and emotionally, and it was even evident to
others.
나는 항상 크리스찬이었다. 감리교도로 자라났다. 하지만 나는 나의 영적인 믿음과 다른 나의 여행을 위해 준비될 어떤 것도 읽지 않았다.
I have always been a Christian, being raised a Methodist, but I had not read
anything that would have prepared me for my journey other than my spiritual
beliefs.
내가 잠자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이 놀랍도록 밝은 빛에 휩싸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 생각은 나는 내 눈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이 것이 일반 빛이 아니란 것을 알아챘다. 그 따뜻함, 귀속감, 평안, 특별히 사랑의 느낌을 설명할 어떤 인간의 언어도 존재하지 않았다.
행복이란 단어가 마음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느낌을 설명하는데 어떤 정의감도 들어 있지 않다. 사랑이란 단어도 어떤 정의감을 풍기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안다고 생각한다. 마치 새로 태어난 아기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같은 것말이다. 그 사랑에 1000배 더한 것이라면
가깝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만약 아니라면, 최소한 우리는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두말할 필요없이, 나는 곧
내가 고향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떠나기를 원치 않았다. 내가 지금은 네가 여기머무를 때가 아니고 내가 해야할 일이 아직 많다며 내
딸들을 돌봐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슬펐다. 그가 나의 딸들에 대해 언급할 때, 나는 딸들에 대한 사랑을 기억했고 그가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눈을 뜨면 두려워하지 말고 조용히 있고 의사들이 원하는 것을 하면, 4일안에 집에 갈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During my sleep, I found myself engulfed in this tremendously bright light.
First thought was that I needed to protect my eyes but quickly realized this was
no ordinary light. There are no words in the human language to describe the
feeling of warmth, belonging, peace, and especially love. Euphoria is a word
that comes to mind, however it still does no justice explaining the feeling. The
word love does no justice either, for we think we know what love is, such as the
love a mother has for a newborn child. Multiply that by thousands, and we might
come close, if not, at least we would find ourselves headed in the right
direction. Needless to say, I knew in an instant I was home and I did not want
to leave! It saddened me being told that it was not my time for me to stay, that
I still had a lot left to do, and that I would have to take care of my
daughters. With him mentioning my daughters, I remembered the love I had for
them and knew he was right. I was then told that when I opened my eyes, fear
not, stay calm, do what the doctors want to do and you will be home in four
days...
내가 깨어났을 때 수간호원이 내 얼굴위에 있었다. 보통 나의 배경을 아는 것은 정말 나를 놀래키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에 대한
압도적인 평화가 있었고 또다른 간호원이 나를 리도카인으로 못박았음을 눈치챘을때에도 흥분하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한 남자가 전기 패들 기기를
들고 문을 박차고 왔고 그들은 강한 순간을 경험하는 듯 보였다. 나는 다시 수간호원을 보았고 그녀에게 그들이 나를 저 패들로 때리려고 하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녀는 충격받은 듯 했다. 그리곤 웃음을 짓고 아니라고, 당신은 착한 소년이 된다고 말했다.
I awoke with the head nurse right in my face. Ordinarily, that would have really
startled me knowing my background. But there was an overwhelming peace about me
and I did not get excited even noticing that another nurse had been nailing me
with lidocaine. Then all of a sudden a man came busting in the door with the
electric paddle machine and they seemed to be experiencing an intense moment. I
looked back at the head nurse and asked her if they were going to spank me with
those paddles? She seemed shocked, then smiled and said no, you are being a good
boy now...
새벽 6시, 내 심장은 부정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경고음을 냈다. 그 때 그들은 문에 도착했다. 나는 이미 죽음선상에 있었다. 수간호원이 내
생명을 살렸다. 그리고 의사들이 더욱 그러했다. 나는 눈에 띨만한 심장에 무리가 없었다. 후에 의사가 이것만 보면 일종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강한 심장을 가졌다고 말했다. 내가 사선에 있었을 때, 심장 근육은 심장을 보고하기 위해 피를 지나가게 하기에 충분하도록 경련을
일으켰어야 했다. 물론 나는 꿈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에서 일어난 일에 강한의심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꿈으로 믿으려고 노력중이었다. 하지만
벌어지는 일들이 나에게 내가 꿈이상의 것을 경험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At 6am., my heart went into arrhythmia and set off the alarm. By the time they
had reached the door, I had already deadlined. The head nurse saved my life and
even more amazing, especially to the doctors, I had no noticeable heart damage
at all. Later the doctor said that in itself was somewhat of a miracle. He put
it off to me having a strong heart and when I deadlined, the heart muscle must
have cramped enough to pass blood through it for its protection. Of coarse, I
had a strong suspicion as to what happened still remembering the dream, but was
it a dream? I was trying to believe it was but things started happening to prove
to me that I had experienced more than just a dream.
그들은 CCU로 뛰어들어와 나를 안정하게 놓고 두가지 이상한 막힘현상을 찾기 위해 카테터를 했다. 나의 전면 왼쪽 동맥은 85% 막혔다. 나의
뒷쪽 주 동맥은 95% 막혔다. 하지만 나의 오른쪽 전면은 막힘없이 깨끗했다. 내 심장 주변에는 아주 작은 플라그가 있었다. 그리고 나의
동맥들은 마치 누군가가 매우 작은 실로 묶어놓은 듯이 보였다. 의사는 나에게 조용히 있어 다시 심장마비에 들어가지 않게 하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한번의 심장마비에서 또 살아남으면, 내 심장의 3분의 2가 막힘때문에 풀어질 것이고, 심장교체를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놀랍게도 나는 조용히 있었다. 사실상 나는 이것을 휴가로 받아들였고 단지 이 상황에서 유머를 찾아내는 것 외엔 어떤 일을 하는 것을 거부했다.
They rushed me into the CCU unit to get me stable and did a catheterization to
find two strange blockages. My front left artery was 85% blocked, my rear main
artery was 95%blocked, but my right front was clear of any blockage. There was
very little plaque in or around my heart and the arteries looked as if someone
had tied them off with a very small string. The doctor stressed me to stay calm
to keep me from going into another heart failure for he said that if I did
survive another one, I would probably loose two thirds of my heart due to the
blockages and would then have to under go heart replacement. To everyone's
amazement, I stayed calm. As a matter of fact, I took it as a vacation and
refused to do anything but find humor about the situation.
나는 내가 안정이 되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내가 머무는 동안 책을 하나 쓸 수 있을 거란 느낌이다. 그리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고 혈관형성수술을
받았다. 이 긴 이야기를 짧게 하기 위해 나는 내가 꿈을 꾼 이후 4일만에 집으로 보내졌다. 나는 내 아내에게 이 꿈을 말해야 한다. 아내는
내가 이것을 아무에게 이야기할 때마다 화를 냈다.그 때, 그녀는 충실하지 않았었고, 그녀가 어떻게 나와 이혼할지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내 딸들을 내가 돌봐야한다고 들었다고 말했을 때, 내가 짐작하기론 그녀는 하나님이 그녀에게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지옥은 이유를 알지 못하게 나에게 강하게 왔다.(I guess she thought that God was on to her for, from
then own, the hell intensified with me not knowing why.)
I feel that I could write a book on just my stay at the hospital for I was
stabilized, then transferred to another hospital and underwent angioplasty. To
make this long story short, I was released to go home four days after my dream.
I have to say dream for my wife became ballistic every time I referred it to
anything else. At the time, she was being unfaithful and starting to plan how
she was going to divorce me and when I told her that I was told that I would
have to take care of my girls, well, I guess she thought that God was on to her
for, from then own, the hell intensified with me not knowing why.
모험담이 여기서 끝나는가? 아니다! 1년후, 나는 다시 이전처럼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내려갔다. 왜냐하면 내 아내가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때때로 혈관형성이 문제를 고치는데 몇 번이 필요하기도 하고 이는 그 영향부위가 다시 막히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들은 것은 정말 흔했다. 나는 전과 같이 느끼기 시작했고, 다시 막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가 당분간 이것을 견뎌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내가 아직 지옥에 있고 다른 길이 없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다시 나의 영적인 고향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거의 1년간 내가 사선에 있던 날까지 우리는 호숫가에 있었고 나는 번개에 맞았다! 번개가 땅을 칠 때, 나는 캠핑하는 사람 옆에 내 뒤에서 캠핑
문에 서있는 아내와 함께 접이식 의자에 앉아있었다. 번개는 가지를 쳤고 나의 왼손을 때렸고 내 가슴을 지나 내오른손에 와서 소풍 테이블을
때렸다. 나는 네온 빛처럼 반짝거렸고 이것은 단지 내 허리 위에서 내턱 아래까지만 영향을 줬고 오른손의 손가락 끝에 물집이 생기게 했다. 번개가
분명히 내 주의를 돌렸다고 말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아니라 그녀가 맞았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일시적으로 내 팔을 사용못하게
되고 매우 심하나 통증을 겪었다. 하지만 3일이 지난 후에 번개로부터 회복되었다. 나는 마치 백만 장자처럼 느꼈고 내 심장때문에 다시 병원에
돌아와야 했다. 내 심장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또 한번의 카테터를 해야했다. 그는 플라그가 전혀 없음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이전 수술에서 생긴
매우 작은 상처도 그를 놀라게 했다. 그는 내 심장의 놀라울만치 좋은 상태를 설명할 수 없었다. 나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손이 내려와 나를
치료했다고 말했다. 나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는 내 아내가 나를 다시 get me down하는 것을 거부했다. 나는 바깥 활동을
사랑했고 그(하나님)을 다시 슬프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Does the saga end there? No! A year later I had again got down almost in the
same shape as before because my wife never let up. I was told that sometimes
angioplasty takes a couple of times to fix the problem for it is normal for
people to reblock in the affected area. Really quite common I have been told and
I started feeling as before and knew I was blocking up again. I thought I only
had to endure it for a while and I could go back to my spiritual home for I
still felt I was in hell and knew no other way out. Well, almost a year to the
day I had deadlined, we were at the lake and I was struck by lightening! I was
sitting in a folding chair next to the camper with my wife standing right behind
me in the door of the camper when the lightening bolt hit the ground, branched
out and struck me in my left hand, went through my chest and came out my right
had and struck the picnic table. I lit up like a neon light with only being
affected above the waist to right below my jaw and blistered the tips of my
fingers in the right hand. My wife almost had a nervous breakdown for she is
deathly afraid of lightening and now, I must say that it definitely gets my
attention. But you would have thought that she was struck, not me, and I
temporarily lost the use of my arms and was in great pain. However after the
third day recovering from the lightening, I felt like a million dollars and had
to go back to the hospital for my heart doctor to do another catheterization to
check the condition of my heart. He was amazed to find no plaque at all and saw
very little scar tissue left from the previous operation. He could not explain
the remarkable condition of my heart. My mother told me that the hand of God
came down and cured me. I agreed, but from then on I refuse to let my wife get
me down again for I love the out doors and I do not want to displease Him again!
꿈이라고 부르던 것은 후에 더 진가를 드러냈다. 2년 후, 크리스마스때 나는 이혼을 맞았다. 그리고 나의 큰 딸이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받았던
것중 가장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말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녀 말이 맞다.
The so-called dream later made more sense. Two years later I was hit with a
divorce at Christmas and my oldest daughter told me that it would be the best
Christmas present I'll ever receive. You know, she was right!
그녀는 나와 떠났고 나는 그녀를 양육하는 것을 마쳤다. 지금 21살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내 어린 딸을 양육하는 과정에 있다.
이혼때문에 떠난 후 3개월 후 나는 내 위장약을 끊었고 8개월 후, 심장약을 끊었다. 의사는 그의 고개를 저의면서 약이 더이상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행복? 흠.. 아직 완전히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내 고향에 돌아가는게 허락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She left with me and I finished raising her, now 21 and married, and I am still
in the process of raising my youngest. And by the way, three months after
leaving because of the divorce, I was taken off of my stomach medicine and eight
months later was taken off of my heart medicine with the doctor shaking his head
saying that medication is no longer needed. Happy? Well, not completely, but I
am satisfied with life now but still look forward to the day I am allowed to
return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