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설명:
이 체험수기는 www.near-death.com의 게시판에 처음으로 올려진 후, Kevin Williams와 저자의 관대한 허락에 의해 이곳에
다시 실려지게 된 것입니다.
First presented in the Bulletin Board section of www.near-death.com, and
re-printed here with the generous permission of Kevin Williams and the author.
10대때, 나는 꿈에서 자주 일어나는 몇가지 영혼의 체험을 했다. 내가 나이들어가고 인생이 점점 더 소모성이 되어감에 따라 이들 경험들은
사라졌다. - 내가 첫 아이를 임신하기전까지 거의 사라졌다. 내 아이가 태어난 후 곧 나는 내가 내 생명을 앗아갈 끔찍한 자동차 사고를 맞게
되리라는 가장 공포스러운 꿈을 꾸었다. 몇 달 동안 나는 두려워했고 매우 조심했으며, 그 괴물차를 찾아나서기도 했다. 그 때, 내 아들은
태어난지 7달 되었던 때다. 나는 나스스로 그것은 그냥 꿈이었고 앞으로 닥쳐올 것이 아니다고 확신을 주었다. 나는 새로운 선생님 위치에 있었고,
한 아이와 한 가정 그리고 돌봐줘야할 남편이 있었다. 나는 이러한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이 벌어졌다.
As a teenager, I had several psychic experiences often occurring in dreams. As I
grew older and life more hectic, these experiences diminished - almost
disappeared until the pregnancy of my first child. Shortly after his birth I had
the most horrific dream that I would be in a terrible car crash that would take
my life. For months I was terrified and was extremely cautious and on the look
out for that monster vehicle. By the time my son was 7 months old, I convinced
myself that it was only a dream... nothing of what was to come. I had a brand
new teaching position, a baby, a home, my husband to take care of...I had put
too much energy into this thing. Then it happened.
나는 그날 학교를 바로 떠났다. 나는 내 아들을 그의 할머니로부터 받아서 야구경기를 보기 위해 학교로 서둘러 돌아오기를 원했다. 내 아들과
오후시간을 보낼 완벽한 그림이었다. 내가 보통의 조심성을 가지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려는 중, 나는 얼마간 녹색불이었던 신호등으로 좌회전했다.
이날은 나의 행운의 날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자 한 순간 나는 죽었다.
I had left school right away that day. I wanted to pick up my son from his
grandmother and hurry back to school to watch a baseball game. It was a picture
perfect way to spend the afternoon with my son. As I was exiting the freeway
with usual caution, I made a left hand turn on a light that had been green for
some time. This was my lucky day I thought. Then in an instant I was gone.
즉시 나는 내가 있었던 곳중에 가장 아름다운 고요한 장소에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와 내가 이전생에서 알던 다른 사람, 그리고 한
수호자(Guardian)가 변환하고있는 나를 도와주려고 했다. 그들은 나에게 사고에 대해 얘기해줬고 그 지역을 보여줬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집에 돌아갈 때라고 말했다. 그 장소의 넘치는 사랑과 행복감은 매우 유혹적이었다. 나는 매 순간 내자신이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런 두려움과 공포에 나는 울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죽을 수 없었다. 내 아들에게 어떤 일이 벌러질 것인가? 그는 난지 7달된 아이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나는 아이가 그 아버지의 부모님 손에 자라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안된다, 안돼, 안돼, 지금은 내가 가야할 때가 아니다. 그들은 틀렸다. 사랑의 포옹 후에, 그들은 나에게 내 아들과 내 전
가족은 내 죽음 후에도 잘 지낼거라는 것을 보여주며 나를 조용하게 했다. 내 어머니는 내 할머니에게 기댈 수 있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녀는 회복될 것이다. 내 남편은 상처받고 슬펐고 외롭겠지만 또 회복되고 결과적으로 다른 사랑을 만나게 될 것이다. 죽음은 우리가 지구에서
배워야할 수업의 일부다. 그리고 나의 죽음은 내 인생과 관련된 것을 위한 중요한 배움이다. 나는 내 장례식을 보았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어떻게 가까이 가는지 보여줬고 그들 영혼들이 열려있을 때, 결과적으로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고 들었다. 나는 이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들은 괜찮을 것이다. 나는 좀더 가벼워짐을 느꼈다. 하지만 잠깐... 내 아들. 나는 내 아들을 두고 갈 수 없어! 아기는 그들의 엄마를
필요로 한다. 나는 그의 엄마가 되야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대로 가게 놔둘 수 없다.
Immediately I was in the most beautiful serene place I had ever been. My
grandfather, another person whom I had known in a previous life, and a guardian
were ready to help me with the transition. They told me of the accident, showed
me the site. It was my time to come home they said. The overwhelming love and
happiness of that place was so inviting. I could feel myself becoming lighter
each moment. In a fit of fear and panic I began crying. No, I couldn't be dead.
What would happen to my son? He was seven months old! He would never remember
me. His father didn't even know how to take care of him. I didn't want him
raised by his father's parents. No, no, no...this was not the time to go. They
were wrong. In an embrace of love they calmed me by showing me that my son, my
entire family would be okay after my death. My mother could lean on my
grandmother. It would take time, but she would heal. My husband, hurt, sad, and
lonely would also heal and eventually find love once again. Death is part of the
lessons we are to learn on earth, and my death was an important lesson for those
involved in my life. I was shown my funeral, taught how to be near those I loved
and told I could eventually communicate with those whose spirits were open. I
could accept this. They would be fine. I was feeling lighter all the time. But
wait...my son. I couldn't leave my son! Babies need their mommies. I needed to
be his mommy. I couldn't let go.
많은 인내가 내게 보여줬다. - 많은 사랑. 내 가이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아직도 나의 인간적인 면에 연결되어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나의
인간적인 면이 벗어지면, 나는 공기처럼 가볍게 느낄 것이고 지극한 행복감과 사랑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말은 정의로운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나의 인간적인 무게를 던져버리도록 도와줬다. 그 감정은 매우 컸고 나를 점점 더 강하게 밀고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내 아들에 대한
나의 연결은 매우 강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장소에 영원히 방황하는 듯 했다. 우리는 내 삶에 대해서, 종교에 대해서, 지구에서 번성할 수
있도록 우리가 잊어버려야하는 영혼의 비밀에 대해서 토론했다. 그 동안 나는 놀라움에 빠져있었다. 일부는 내가 내세가 그럴 것이라고 항상 꿈꿔왔던
그런 것과 같았다. 몇가지는 내가 잘못생각했던 것이었다. 나는 내가 "와우!"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의 다른 사랑했던 사람들은
어디갔는가? 내가 언제 돌아가신 나의 다른 할아버지 할머니를 볼 수 있는가? 시간이 되면 - 그들은 다른 차원에 있다. 내
변화(transition)이 완료되면 나는 내가 준비되면 또 다른 레벨들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종종 내 아들에 대한 생각이 나를 다시한번
무겁게 했다. 나는 아이가 엄마없이 자라난다는 생각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그 아이를 위해 엄마가 되어줄 거라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리고 그들은 Jake의 인생을 보여주었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매우 행복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을 꿰뚫는
듯한 슬픔을 가지고 있었다. 이 것은 그가 배워야할 레슨이었다. 그는 인생으로 오는 것이 그가 배워야할 주된 레슨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Jake가 7살내지 8살때 그의 새로운 엄마를 보았다. 매우 아름다운 여자였다. Jake를 분명히 보살펴줄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를 잘 대해줬다. 하지만 그녀는 내 남편과 갖게되는 그녀의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의 아이에게 보내는 사랑과
다른 사랑을 Jake에 갖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Jake에게 꿈꿔오던 것이 아니었다. 이럴 순 없었다. 나는 내 남편에 대해서는 행복했다.
그는 괜찮았고 행복했다. 하지만 내 아들은 달랐다. 다른 세계로 가기위해 나를 변화시키는 지속적이고 인내력이 필요한 레슨을 배웠다. 나는 이렇게
가도록 내버려둬야했다.
So much patience was shown to me - so much love. My guides explained that the
feelings I was having were still a connection to my human side. Once my Human-ness
wore off, I would feel light as air, utter happiness, and extreme love. Words do
not do the feelings justice. They worked to help me throw off my human weight.
The feelings were so great and seemed to pull me in stronger and stronger; yet
my connection to my son was so strong. We wandered in this beautiful place for
what seemed an eternity. We discussed my life, we discussed religion, we
discussed secrets of the soul that as humans we must forget, lest we'd never be
able to thrive on earth. All the while I was in awe. Some things were just as I
always dreamed an afterlife would be; some I was just plain wrong and I remember
thinking "wow". Where were my other loved ones? When could I see my other
grandparents who had passed. In time - they were on a different plane. When my
transition was complete I could choose to go to other levels when I was ready.
Every now and then thoughts of my son would make me heavy once again. I couldn't
bear the thought of him growing up without a mother. I was told others would be
a mother for me. First grandparents, and then they showed me Jake's life. He was
the most beautiful boy, so happy, but with a touch of sadness that seemed to
pierce his soul. This was his lesson to tackle. He knew coming into this life
the main lessons he was to learn. It was meant to be. I saw a new mom for Jake
when he was about 7 or 8. A beautiful woman, kind hearted who definitely cared
for Jake, and treated him well, but she was to have her own child with my
widowed husband and the love she showed for her own child was different and
unequal to the love she showed for my child - her stepchild. This isn't what I
dreamed for Jake. This couldn't be. I was happy for my husband. He was okay. He
was happy. My son was a different story. Other lessons were learned in the
constant-patient job of transitioning me to the other side. I had to let go.
때때로 나는 히스테리를 느끼고 잠시 후에 가라앉아 잠잠하곤 했다. 나는 Jake의 자리에 있을 한 여자아이를 보았다. 하지만 그 컨셉 전에
계획은 변경되었고 그녀의 자리를 대신할 Jake의 영혼에 필요한 것이 있었다. 거기에는 Jake가 고칠 수 있는(그는 그렇게 했다.) 많은 큰
변동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나의 죽음을 인정하는데 가장 가까이옴을 느꼈다. 나는 내 아들을 그리워하고 내 삶을 위한 슬픔과 고통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내 인간으로서의 삶을 가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내 가이드는 최대한 노력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절대로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스며나오는 인내심과 사랑의 정도는 믿을 수 없었다. 마침내 나의 내 히스테리는 나를 사랑으로 감싸안는
듯한 더 고결 영혼에 의해 잠잠해졌다. 내 가이드는 내가 되돌아가는 것을 허락하도록 지시받았다. 그들이 좀더 시간을 달라고 간구함에도 그
시점에서 내 영혼이 안식하지 못할 것이란 말을 들었다. 내 영혼을 안정시키고 더 많은 레슨을 배우기위해 나를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내 간청이 내가 돌아올 수 있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내려가기전에 내 친구들과 가족이 이로인해 그들의 레슨이 연기될 것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 죽음이 가져다줄 그 배움을 언젠가는 겪어야 될 것이다. 내 영혼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갈 것이라는 것이 준비가 되었다.
어떤 레슨은 내가 풍성하게 하거나 새롭게 얻은 것이다. 그쪽 세계에서 내 도착과 함께 배워진 일부 레슨은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언제 다시 죽게될 것인지를 아는 것은 나에게 좋지 않고 그렇게 된다면 그 시간이 가까이 오게되면, 한 인간으로서 나는 그것에만 촛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마지막 일은 내가 그 사고지역으로 되돌려보내진 것이다. 그리고 즉시 하지만 잠깐! What qualifies as
older? 이것이 단지 몇년 더 나이든 것을 의미하는가? 십대? 내가 그들이 결혼하는 것을 보게되고 그들 자신의 아이를 갖는 것을 보게될까?
이 점은 사고 이후 즉시다뤄질 어려운 측면이다. 나는 내 아들과 다시 생을 같이하게 되었다.
At times I became hysterical and then moments later I was calm and serene. I saw
a girl child who had been meant in Jake's place, but before conception, plans
changed and there was a need for Jake's spirit to take her place. There was much
upheaval that Jake could help mend (and he did). At a time when I felt the
closest to accepting my death, I experienced a resurge of sorrow and pain,
longing for my son, for my life. I couldn't let go of my human life. My guides
tried their hardest, they never gave up, they never became discouraged. It is
unbelievable the amount of patience and love they exuded. Finally, my hysteria
was calmed by a higher spirit who seemed to envelop me in love. My guides were
instructed to allow me to return. Despite their pleas to allow them more time,
they were told that at this point, my spirit would not rest. It was best to let
me return, to settle my spirit, learn further lessons. My pleading won my return
for the time being. I understood before my descent that my friends and family
had lessons that were being postponed, but they would have to learn the lessons
at some point that my death taught. Arrangements were made for when, where, how
my spirit would return; what lessons were I to have enriched or acquire new.
Some lessons learned in my arrival on the other side would have to be forgotten,
and it was not good for my soul to know when I was dying again or else as a
human I would focus on only that, especially as the time neared. The last things
I remember were being taken back to the accident site, and just before my
descent, I was told when my children were older it would be time to come home
for good. I accepted it immediately, but then, wait! What qualifies as older?
Does it mean only a few years older? Teenagers? Will I live to see them marry
and have their own children? This was a difficult aspect to deal with
immediately after the accident. I had a life with my son again.
나는 내가 얼마동안 떠나있었는지에 대해선 생각을 못했다. 나는 내가 운좋아 살아남았다고 들었다. 한 큰 설비트럭이 빨간불임에도 달려서 나의
컴팩트 자동차의 드라이버좌석 옆면을 치었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음에도 의사들은 만약 에어백이 열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
얘기한다. 부작용으로 어떤 것이 있으리라 짐작되진 않았다. 사고 이후 첫 1년은 내가 할 수 있는한 최고의 삶, 가장 행복한 삶을 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나는 골절된 어깨뼈, 절단된 갈비뼈와 두개의 엉덩이뼈 골절로부터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고통받았다. 나는 통증은 6개월에서부터
심하면 1년사이에 없어질 거라고 들었다. 3년 후, 통증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2년째 될때 가장 심했었던것 같다. 나는 자살할 수도
있었다.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은 이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이 생은 매우 놀라웠다. 사랑으로가득찼고 즐거웠다. 내 아들과 후에 내 딸은
내가 계속 있게한 유일한 장본인이었다. 나는 그들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다. 고작 3년이 지난, 오늘 나는 내세에서의 내 집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하면서 지구로 돌아온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내시간이 마지막을 맞기 전까지 평화와 행복을 찾기 위해 살고 있다.
I had to spend it right for I had no idea how much longer I had left. I was told
I was lucky to survive. A large utility truck ran a red light and hit the
driver's side of my tiny compact car. Despite wearing a seatbelt the doctors say
I would not have survived if it were not for the airbags to open, something that
is not supposed to happen in a side impact. The first year after the accident
was an attempt to live the best I could, the happiest I could. I was suffering
however from severe pain from a fractured shoulder bone, broken ribs, and two
hip fractures. I was told the pain should disappear in six months to a year at
the worst. Three years later, the pain has not gone away. The second year
however seemed to be the worst. I became so suicidal. All I wanted to do was to
return to this place, this life that was so awesome, so love-filled, so joyous.
My son, and later my daughter were the only things that made me go on. I was
here for them. Today, only three years later I have accepted my return to earth,
long to return to my after-life home, and struggle to find peace and happiness
until my time here comes to its final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