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지난 지금 사후 경험을 회상 그로 인한 내 인생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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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설명 (Translated by
Peter):
20년후: 임사체험과 나의 삶에
끼친 영향
TWENTY YEARS LATER: MEMORIES OF MY DEATH AND IT'S EFFECT ON MY LIFE
Northern Colorado 대학에서의 나의 젊은 시절(1976) 겨울동안, 나는 테니스클래스 수업을 들었다. 밖에 코트에서 테니스치기엔
너무 추워서 우리는 실내 체육관의 벽에 공을 튀기고 있었다. 내가 급속도로 심해지는 편두통증세를 느끼기 시작했을때, 나는 수업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고통은 나의 한계를 넘어섰다. 나는 고통이 심해졌을 때 쓸 수 있는 처방약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완전히 조절하지 못할
드문 경우에만 약을 사용하곤 했었다. 약은 나를 24시간동안 자게 만들었다. 나는 기숙사로 돌아와야했지만, 기다릴 수 없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쓰러질것을 감안해서 약을 먹었고 누군가가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를 바랬다.
During the winter session of my Junior year (1976) at the University of Northern
Colorado, I was enrolled in a tennis class, It was too cold to play outside on
the courts so we were hitting balls against the walls of the indoor gym, when I
began to feel the pain of a migraine headache quickly building in intensity. I
became frightened as I realized that by the time class ended, the pain would be
beyond my control. I had been prescribed a medication I carried with me that I
could use when the pain was too extreme. I had only used it on a few rare
occasions when I felt unable to function at all. It would put me to sleep for
about 24 hours. I needed to get back to my dorm room, but I felt I couldn't
wait. I took the medication assuming I would collapse, and hoped that somehow
someone would get me home.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두통으로 심하게 고통받았다.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두통은 더 심해졌다. 나는 뇌종양을 제거하기 위한 테스트를 위해
입원한 적도 있었다. 한 의사가 종양들이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상담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Inderal(교감신경차단제)을 매일 처방받았고 편두통을 위해 Cafergot(두통약)과 통증이 있는 경우에는 매 4시간마다
Darvon(진통제)을 먹었다. 편두통은 한번시작하면 몇주동안 지속됐다. 나는 통증을 무서워했고 나에게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20살 나이를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20살 생일축하받게 되었을 때, 나는 낙담했다. 나는 내가 계속 살아야하고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바라보고 자라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시점은 테니스 수업이 있던 그 때이후 8개월 정도 되었을 때이다. 터질듯한 고통이
심해질때는 나는 약을 먹어서 당분간을 모면했다.
As long as I could remember I bad suffered with headaches. As I entered
adolescence they worsened. I was even hospitalized for testing to rule out brain
tumors. I received counseling after one doctor believed them to be stress
related. Eventually I began daily treatment with Inderal, used Cafergot at the
onset of a migraine and took Darvon every four hours when I was in pain. My
migraines usually lasted for weeks at a time. I was terrified of the pain and
was convinced that something was so terribly wrong with me, that I would never
live to the age of 20. 1 felt depressed when I should have been celebrating my
20 birthday. I realized I had to go on - plan on living - look to the future -
grow up. It was about eight months after that milestone, that during tennis
class, I used the medication that I saved for a time when the exploding pain was
too much.
나는 약이 몸의 감각을 잃게 함을 느끼면서 벽을 향해 공을 치는 것을 계속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 다음 장면은 기숙사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15-20분 정도의 거리였다. 하지만 난 단지 한 순간만 기억한다. 나는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캠퍼스 서점을 지나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 기숙사방에서 기한이 곧 다가오는 논문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기억한다. 나는 단지 제목만 타이핑해서 넣으면 완성이 되었다.
I continued hitting the ball against the wall as I felt the medication numbing
my body. The next memory I recall is walking back to the dorm. It was a 15 - 20
minute journey, but I remember just a moment. I was walking alone, up the hill
past the Campus Bookstore. Then I remember being in my dorm room worrying about
a paper that I realized was due soon, I just needed to type the title page and
it would be done.
나는 내가 실제로 약을 먹었는지 아니면 먹는다는 생각만 한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기억하려고 노력했지만 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아직 깨어있었고 통증이 있었기때문에 내가 먹지 않았을 것이라 결정했다. 그래서 또 한번 먹었다. 그리고 내 논문을 끝내기 위해 타이프라이터에
앉았다. 타이틀 페이지는 타이프하는데 몇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몸의 컨트롤을 잃고 타이프라이터앞으로 쓰러졌다. 나는 의식이 있었고
두통을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움직일수 없었고 내 목 아래로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거기에 힘없이 누워있었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려했지만, 청소아주머니가 나의 방 밖에서 통로를 진공청소기로 청소하고 있었고 아무도 내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I began wondering if I had taken the medication or just thought about taking it.
I tried to remember, but couldn't. I decided that I must not have taken it since
I was alert and in pain, so I took another dose, and then sat down at the
typewriter to finish my paper. The title page would take just a few minutes to
type and I knew from past experiences that the medication would take longer than
that to be in working. Moments later I lost control of my body and fell forward
into the typewriter. I was still conscious and could feel the migraine, but
could not move or feel anything below my neck. I just lay there helpless. I
tried to call for help, but a cleaning lady was vacuuming the hallway outside my
room and no one could hear my cries.
진공청소기가 꺼지고, 나는 다시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한 남학생이 내 소리를 들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내 방에 들어왔고 나는 나를 침대에
데려가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마비되었다고 얘기했다. 그는 타이프라이터에서 나를 들어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놓았더니 내가 앞으로
쓰러져 내 얼굴이 타이프라이터에 부딪혔다. 그는 어쩔 줄 몰라서 도움을 청하러 나갔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그는 친구를 데려왔다. 그 두명이
나를 움직이기위해 애를 써 몇 피트 밖에 침대로 옮겼다. 내가 침대에 누워있자 그들은 떠났고 나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Once the vacuum shut off, I cried out again and a male student heard me. He
cautiously entered my room and I asked him to help me to my bed. I told him I
was paralyzed. He pulled me out of the typewriter and sat me up in the chair,
but then let go and I fell forwards, my face crashing into the typewriter again.
He was at a loss for what to do so went for help. When he returned, he had a
friend. The two of them struggled to move me the few feet to the bed. Once I was
on my bed, they left and I drifted immediately to sleep.
잠자는 동안 나는 내가 완전히 통증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육체적 불편함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것은 압도적인 깨달음이었다. 나는 편두통도 느낄 수 없었고 내 밑에 있는 침대 혹은 내 몸의 옷, 내 머리의 베게도 느낄 수
없었다. 정말 안도가 되었다. 동시에 나는 평화와 만족, 기쁨, 행복, 사랑에 가득찼다. 모든게 믿을 수 없을만치 놀라웠다. 내가 그 느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설명할 수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 느낌은 오늘날 2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분명히 기억한다.
While sleeping I became aware that I was totally without pain. I realized I had
never in my life been without some kind of physical discomfort. It was such an
overpowering awareness. I couldn't feel the migraine, or the bed beneath me, or
the clothing on my body or even my head on the pillow. It was such a relief. At
the same time I was overcome with peace, contentment, joy, happiness and love.
It all felt so incredibly wonderful. There is no way I can adequately explain to
others how wonderful that felt, but I remember it clearly even though more than
20 years has passed since that day.
또다른 변화가 내 마음에 일어났다. 나는 완전히 깨어있었고, 그 경험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내가 전에 항상 가졌던 그 마음이
아니었다.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확실히 이해하게되었다. 나는 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두려움, 불확실감이나 싫은
감정은 실오라기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그것을 경험하면서 나는 내방에 들어온 내 룸메이트 Trina 에게 관심이 갔다. 그녀는 방에 들어와서
낮은 쪽 침대에서 자고있는 나를 보고는 높은쪽 침대위로 올라갔다. 나는 그녀가 침대에 올라가면서 침대를 어떻게 흔드는지 놀랍게 쳐다봤다. 그러나
나는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성경을 꺼내서 열고 시편을 읽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녀의 어깨너머로 그녀가 무엇을 읽는지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내몸에 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래로 내 자신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Trina를 다시 쳐다보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죽은지 모를 것이다" 나는 그 생각에 흥미로워졌다.
Another transformation took place in my mind. I was completely alert and very
interested in the experience, but my mind was not at all like the mind I had
always had. I fully understood what was happening- I knew I had died, but I felt
not even a hint of fear, uncertainty or unwillingness. As I was experiencing
this, I became distracted by my roommate, Trina, who entered the room, looked at
me "sleeping" on the lower bunk, and then climbed up to her top bunk. I marveled
at how she had shaken the bed climbing up, but I had felt no pain. I watched as
she reached for her Bible, opened it to Psalms and began reading. It was while I
was looking over her shoulder to see what she was reading, that I realized I was
no longer in my body. I looked down at myself on the lower bunk, looked again at
Trina, and thought, "She doesn't even know I'm dead!" I was amused by that
thought.
내 관심은 방을 떠나고 있었다. 내가 평화로운 상태로 쉬는데 일정 시간이(그때 시간은 현실감이 없었다.: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있었다. 내가 그
지식을 얻은 것이 이 시간중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배운 기억은 없다. 나는 좀 떨어진 희미한 빛을 보기전에는 움직이는 느낌조차
인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둠에 있고 빛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My focus left that room and there was a period of time (time was no longer a
reality) when I rested in a state of peace. It may have been during this time
that I gained the knowledge I later recalled, but I have no memory of learning.
I wasn't even aware of the feeling of movement until I began to see a glimmer of
light in the distance and realized that I was in darkness, traveling towards the
light.
내가 그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내가 어렸을 때, 케냐에서 우리 기숙학교위의 언덕에 있는 구부러진 긴 기차터널을 탐험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 터널은 내가 보았던 어떤 것보다 어두웠다. 나는 볼수없다는 것과, 소리로 들리기를 터널은 박쥐들이 가득차다는 생각에 놀랐었다. 나는 내가 먼
거리의 작은 빛을 처음 발견했을 때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을 기억한다. 내 두려움은 빛이 커짐에 따라 사그라들었다. 내 어릴적 기억은 및을 향해
나아가는 시각적인 경험과 비슷하다. 하지만 감정들과 느낌들은 더 달랐다. 나는 나의 인간으로서의 마음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기쁨을 경험하고
있었다.
When I think of that now, it reminds me of when I was a child and we explored
long curving train tunnels in the hills above our boarding school in Kenya.
Those tunnels were blacker that anything I had ever witnessed. I had been
frightened by the inability to see, by the sounds, and the knowledge that the
tunnels were full of bats. I remember the sense of relief when I would first
spot the dot of light far in the distance. My fears dissolved as the light grew.
This childhood memory is similar to the visual experience of going towards the
light, but the feelings and emotions could not have been more different. I was
experiencing pleasure beyond what my human mind had ever imagined.
빛이 커짐에 따라서 어둠을 압도했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도착했다. 몇년 전에 나는 영국 북부지방의
District 호수의 경이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아름다음에 놀랐었는데, 내가 죽었을때 간 곳은 훨씬 더 사랑스러웠다. 낮은 언덕과 흐르는
강을 가진 계곡이 있었다. 가장 부자인 이웃의 잔디보다도 훨씬 더 녹색의 풀들이 있었다. 매우 아름다운 화창한 날 나는 걸었고 내 주변환경에
즐거워했다.
As the light grew and overpowered the darkness, I came into the most beautiful
place I have ever seen. A few years earlier I had viewed the splendor of the
Lake District in Northern England, and marveled at it's beauty. But the place I
went when I died was much lovelier. There was a series of rolling hills and
valleys with streams flowing through. The grass was greener than any lawn in the
wealthiest neighborhood. It was a beautiful sunny day and I walked along, just
enjoying my surroundings.
나는 혼자있었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나는 혼자있음을 느끼지 않았는데, 내가 그 아름다운 언덕을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한 남자가 낮은
돌벽뒤에 서있는 것을 눈치챌 때까지 다른 사람에 대한 기억은 가지고 있지 않다.내가 이해해야할 많은 것이 있었다. 나는 인간으로서 마음의 제한이
없었다. 나는 벽 뒤에 서있는 사람이 나를 하나님께 데려갈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내 경험이 나의 필요에 기초한 것이란 것을 알았다.
나는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보았다.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필요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전에 나의 인간적인 마음에는사후세계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거 거기있었을 때에는 나는 내가 인식하는 장소에 있었고 내가 항상 알고있던 사람이 거기 있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았고 어떤 것이 나에게 오게될지 알았다. 나는 매우 기뻤다.
I was alone, but not really aware of my aloneness. I didn't feel alone, but when
I think about those beautiful hills, I have no memory of another person until I
noticed a man standing just behind a low stone wall. There was so much I
understood. I didn't have the limitations of the human mind. I knew that the man
on the other side of the wall was going to take me to God. I knew that my
experience was based on my needs. I saw a person I could trust. Another person
would see what they needed to see. Previously, in my human mind I had only had a
vague collection of thoughts about the afterlife, but when I was there, I was in
a place I recognized and the man was someone I had always known. I knew where I
was going and what was to come and I felt overjoyed.
그 사람은 청바지와 loose short와 같은 캐쥬얼한 옷을 입었었다. 그는 매우 상냥했고 정이 많았고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다보았고 갑자기 지금은 내가 죽을 때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기절했었다. 나는 만약 내가 저 벽위로 발을 내딛는다면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나의 선택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와 나는 둘다 내가 돌아가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는 말했다. "지금은 내 때가 아니예요."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그래요. 지금은 그 때가 아니예요."
The man was dressed casually - jeans and a loose short. He was gentle,
compassionate, and focused on me. I looked into his eyes and suddenly knew it
wasn't my time to die. I was stunned, I knew if I just stepped over the wall I
could go on - that I had a choice, but he and I both knew I must return. As I
looked into his face I said, "It's not my time." And he replied, "No, it Isn't."
내가 배운 것과 경험한 것 모두를 설명하려면 종이가 끝없이 필요하겠지만, 이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나는 단지 몇 분의
사후세계를 경험했을 뿐이지만 이것은 깊은 체험이었다.
Even though it would take endless pages to describe all I learned and
experienced, It all seemed to happen in an instant. I had only experienced a
minute sliver of the afterlife, yet it was a profound experience.
내가 돌아가야한다는 것을 알자마자 나는 내자신이 내 몸으로 강하게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매우 격렬하고 고통스럽고 놀라운 순간이었다.
내가 그 순간을 기억할 때마다 심지어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울게된다. 나는 내가 돌아가기로 선택한 것을 믿을 수가 없다. 내가 고통과
스트레스, 두려움과 사람으로서의 제약을 잊어버린 것인가?(그렇다!) 내가 어떻게 내가 들어가게된 평안과 사랑과 기쁨, 아름다움을 놔두고 떠날 수
있었는지? 나는 내가 그 벽을 넘어설 수 있었음을 알았었다. 나는 계속 갈 수 있었다. 내가 다시 돌아오다니 나는 바보다.
As soon as I knew I must return, I felt myself being slammed into my body. It
was a violent, painful and frightening moment. Every time I remember that
moment, even now after all these years, I cry. I couldn't believe I had chosen
to return. Had I forgotten the pain, the stress, the fear and the limitations of
being human? (YES!) How could I have left the peace, the love and joy, the
beauty I had come into? I knew I could have crossed the wall. I could have gone
on. What a fool I was to return.
동시에 나는 내 결정을 후회했다. 나는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었다. 나는 내가 죽었었고 놀랐다는 것을 알았다. 사후세계에
대한 또렷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나는 내가 항상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에 몸서리쳤고 그 시점에서 나의 경험을 잘 진행시킬수 없을 것
같았다.(couldn't seem to process my experience very well at that moment.)
At the same time I was regretting my decision, I was overwhelmed by my human
mind's fear of death. I knew I had died and I was frightened, Even though I had
a clear memory of the afterlife, I was torn apart by the fears I had always had
and couldn't seem to process my experience very well at that moment.
내 룸메이트가 윗쪽 침대에서 내려오고 있을 때, 나는 침대가 움직이는 강한 고통에 의해 깨어났다. 나는 그녀가 침대위로 올라갈때 내가 어떻게
통증에서 풀려나게되었는지 기억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설명하려고 노력할때 말들이 내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첫번째 반응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래 침대에서 잠에 빠져있는 동안 그녀가 성경의 어떤 부분을 읽고 있었는지를 그녀에게 얘기할때, 그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더이상의 대화를 회피했고, 도움을 청하러 나갔을 것이다.
As my roommate climbed down from the upper bunk, I was "awakened" by the intense
pain of the bed moving. I remember how I had been free from pain when she
climbed up. Words started spilling out of my mouth as I tried to explain what
had happened. Her first reaction was disbelief. When I told her what part of the
Bible she had been reading while I was "asleep" on the bunk below, she was
unable to respond- She avoided any further conversations, but must have gone for
help.
우리층을 담당하고 있던 기숙사 감독관이 들어왔다. 그녀는 나와 친한친구는 아니었지만 난 그녀를 존중했다. 그녀는 내 말을 들었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내가 다시 잠에 빠지게 하지 말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내가 만일 다시 기회를 얻는다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얘기했다.
마침내 그녀가 나를 두고 떠났고 나는 잠이들었다. 하지만 두번째 죽을 기회는 내게 오지 않았다.
A dorm supervisor, who was responsible for our floor, came in. She was not a
close friend, but I respected her. She listened and tried to comprehend. I
begged her to not let me go to sleep. I told her that if I had a choice again, I
would not return. She did finally leave me and I did sleep, but I was not given
a second chance to die.
나는 내가 경험한 것을 같이 경험했다는 어누 누구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혼자였고, 혼동스러웠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부정적이었기때문에 내 경험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게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 경험이 나에게 큰 가르침을 줬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고통이 사라지고
믿을수없이 평안함을 내가 느꼈다는 것을 생각할때 나는 내가 항상 가지고 있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을 수 있다. 그 두려움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곳에 다시 가기를 소원한다. 나는 내가 어떤 이유에 의해서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되돌아오기 전에 그 목적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을 알고있다. 나는 내가 그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 필요했다고 이해하고 있다. 사후세계를 잠깐 엿본것으로부터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내 친구나 가족이 죽었을 때 내가 갖게되는 평안함이다. 내
슬픔-상실에 대한 감정-은 진심이다. 하지만 난 그들이 자유롭고 기쁨이 넘친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I had never heard of anyone experiencing what I had experienced. I felt alone
and confused. I quickly became unwilling to talk about my experience because the
responses of others were so negative and hurtful. But I began to realize that my
experience had taught me a great deal. As I thought about the loss of pain and
the incredible peace I felt, I lost the fear of death I had always had. That
fear has never returned. I know what awaits me and I long to be there again. I'm
very aware that I returned for a reason. I don't know what my purpose is, but I
do know that I understood it completely before I returned. I also understand
that I needed to loose that memory. One of the greatest gifts from my peek into
the afterlife is the comfort I have when a friend or family member dies. My
grief is real - my sense of loss, but I know that they are free and full of joy.
내 죽음에 대해서 아주 가끔 얘기를 할지라도 나는 그 경험동안 내가 배운 것을 때때로 얘기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내가 기억할수 있는 것이상의
지식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아주 또렷하다.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때 가장 큰 걸림돌은 적합한 말을 찾아내는
것이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적고있더라도 나는 무엇이 발생했는지,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잘 묘사하기가 어려운 점을
아쉽게도 알고 있다.
Even though I rarely discussed my death, I tried at times to discuss what I
learned during the experience, I am aware that I have knowledge beyond what I am
able to remember, but what I have retained is crystal clear. The greatest
obstacle in telling others is finding the words. Even as I write all of this I
am painfully aware of not coming even close to really describing what happened,
how I felt and what I learned.
내 종교적 관점이 가장 많이 변했다. 나는 크리스찬 가정에서 자라나 10살때, 예수님을 따르는 서약을 했다. 내 부모님은 동부아프리카의
선교사였다. 때때로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을 느끼거나 내가 자라온 사상에 대항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직 내가 크리스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한 서약이 나를 지옥의 영원함에서 구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때때로 서로 다른 종교들,
구원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질문들이나 개념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내가 죽었던 동안에 나는 (그 경험이)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믿음들로부터
나를 멀게하고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그 믿음들을 무효화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때때로 나는 내가 배운 것을 무시하고
어릴때부터 고수해온 믿음에 매달리곤 한다. and other times I've shed beliefs that I know to be
human rather than divine in origin. 내가 배운 것으로 살아가기가 나에겐 쉬운게 아니었다.
My religious views changed the most. I had been raised in a Christian home and
made a commitment to follow Jesus when I was 10 years old. My parents were
missionaries in East Africa. At times I had felt distant from God, or rebelled
against the morals I was raised with, but I still considered myself a Christian.
I believed that the Bible was the Word of God, and that a commitment to follow
Jesus Christ would save me from an eternity in hell. I had at times questioned
the issues that separate religions, various theological questions, or concepts
about salvation. During my death I gained an understanding that not only took me
way beyond my previous beliefs, but in many ways, invalidated those beliefs.
Since gaining such understanding, I have at times ignored what I learned and
clung to beliefs held since childhood, and other times I've shed beliefs that I
know to be human rather than divine in origin. I t has not been easy for me to
process what I learned.
한가지 소득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믿음과 다른 믿음들에 대해서 많이 열려져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필요와 우리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를 알게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형태로 그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주기위해 노력하셨다. 그가 죽기전날 밤에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과 그의 시간이 가까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는 슬퍼했다. 예수님은 그의 인간성에 제한받으셨다. 성령도 우리의 인간성에 의해 제한받는다.
One outcome is that I'm much more open to beliefs that differ from my own
because I know how very limiting the human mind is. I know that God will make
Himself known to us, depending on our needs and our beliefs. God himself, in the
form of Jesus, struggled to bring understanding to His closest devoted
followers. The night before His death, His frustration is obvious as He realized
that they just didn't understand, and His time was near the end. Jesus was
limited by His humanness. The Holy Spirit is limited by our humanness.
성경은 비록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여졌지만, 사람에 의해 쓰여졌고 사람들에게 읽혀진다. 이것은 말을 사용하여야만 한다. 이것은 의미가 깊지만
제한되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이해를 뛰어는 방법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받을 수 없는, 무조건적인,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다. 기쁨, 평안, 행복, 만족, 그리고 사랑은 우리가 이 생에서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사후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구원의 개념은 이미 주어진 것을 붙잡으려는 우리의 시도이다. 구원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가 토론을 하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반영하는 시초는 아니다. 나는 더이상 진실을 구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때가되면 우리 모두가 어떻게 진실들이 서로 정확히 맞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The Bible, even though it was inspired by God, was written by humans and is read
by humans. It is bound by having to use words. It is profound, but limited. It
helps us understand that which is way beyond our understanding. The undeserved,
unconditional, unearnable love of God is beyond comprehension. The joy, peace,
happiness, contentment and love that we experience in our lives, is only a
shadow of the afterlife. The concept of salvation is our attempt to grasp what
is already ours. Our understanding of salvation, much as we debate it, doesn't
begin to reflect God's reality. I no longer try to seek the truth, because I
know in time we all will understand how the truths fit together.
교회(종교)는 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기 위해 - 한계가 없는 것에 한계를 씌우는 - 우리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종교는 영성을 붙잡으려는 우리의 무능력의 소산물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를 먹이고 있다. 종교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자라도록 도와준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선이다. 우리가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또한 우리에게 고통과, 분리와 혼동을 가져다준다.
The Church (Religion) is what we have done to try to understand what is beyond
understanding - to put limits on the limitless - to control what is
uncontrollable. Religion is the outcome of our inability to grasp Spirituality.
Yet - it feeds us, it help us grow closer to God, it is our lifeline, it helps
us understand. It can also bring us pain, separation and confusion.
나는 종교적인 믿음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나는 내 경험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가진 깨달음과 종교적 규례나 규칙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노력한다. 나는 단지 내가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해 하나님과 관련지으려한다.
I don't argue religious beliefs. I don't try to prove the validity of my
experience. I try to not let church rules and regulations interfere with the
understanding I have. I just try to relate to God as best as I can.
나의 죽음 체험뒤에 따르는 내 태도의 변화는 이해하기에 몇년이 소요된다. 나는 내가 배운 것을 계속 기억하고 반영하고 통합한다. 처음에 나는 이
경험을 가진 혼자였다. 나는 그 놀라운 여행과 지식, 깨달음을 가졌었다. 하지만 듣고 이해하는데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는 무능력(여전히
노력중이다.)함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모든 것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사회학 교수님이 나의 친구로서 나에게
Kubler-Ross의 책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이것은 내가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줌과 동시에 나에게는 사실상 엄청난 충격이었다. 나는
나의 경험과 다른 사람의 경험과의 유사성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죽음과 죽는 것에 대한 수업을 들었고 내 얘기를 열기에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의 임사체험에 대한 논문을 썼을 때, 내 담당교수는 내가 경험한 것이 약물 남용에 의한 환각현상이라고 믿었다.
The changes in my attitudes following my death experience have taken many years
to comprehend, and I continue to remember, reflect on and incorporate what I
learned. At first I was alone with my experiences. I had this wonderful journey,
all kinds of knowledge and understanding, but an inability to adequately express
(still a struggle), to be heard, or understood, so I tried to repress
everything. Then a Sociology professor I knew as a friend told me about a
Kubler-Ross book. Reading that was a real "mindblower" as well as an enormous
sense of relief I was not alone after all. I couldn't believe the similarities
between my experience and that of others. I wanted to learn more. I took a class
on Death and Dying, assuming it would be a safe place to open up. When I wrote a
paper about my near death experience, my instructor believed that what I
experienced were hallucinations brought on by the drug overdose.
내가 정직하고 믿을만 하며,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갖게되기 전에 많은 해가 지나야만 했다. - 내 얘기믿어주는 친구들. 이 친구들은
내가 더 얘기하고, 임사체험에 대한 다른 책을 읽고 내가 배운 것들을 내 삶에 적용하도록 격려해줬다.
It was many years before I had the kinds of friends that knew me to be honest,
trustworthy and believable - friends I could trust with my story. These friends
encouraged me to talk more, to read other books about near death experiences and
to integrate what I learned more fully into my life.
내가 내 삶에서 겪은 일들 때문에 내가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 내가 하나님께 나를 데려가달라고 애원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나는 그 경이를 다시
경험할 기회를 갖기 위해 죽음을 기도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살아갈 의지를 줄이게 된 것때문에, 나는 내가 왜 죽음 이후의 삶이 놀라운 것인지
알게된 경험을 갖게 되었는지 질문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런 만족감을 경험하는 것과 그런 아름다움과 평안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그것들을 내 삶 이곳저곳에 적용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죽기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나는 이곳에서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준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There have been times when I have felt so overwhelmed with the difficulties I've
experienced in my life, that I have begged God to allow me to return to Him. I
have prayed for death, for the chance to experience that wonderment again. I
have questioned why I had the opportunity to know how marvelous life after life
is, since one of the results has been a lessening of the will to live. But I
have come to understand that knowing what unconditional love feels like, and
experiencing such contentment, and remembering such beauty and peace means I
have the opportunity to bring that into my experience here and now, and maybe to
even help others understand- I don't have to wait until death. I have the
memories that can help enrich my life here.
내가 사후세계를 경험한 이후 20년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어떤 변화가 이 경험의 결과인지, 어떤 것이 자라고 성숙한 부분인지 확신하진
않는다. 내가 내 인생의 절반을 죽음에 대한 기억을 억누른다 할 지라도 나는 영향을 받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So much has changed in the past 20 years since I tasted the afterlife and I'm
not sure which changes are a result of that experience and what is simply part
of growing up and maturing. I believe that even though I have spent half my life
repressing memories about my death, nevertheless, I have been affected.
그때 지금
-나는 많은 질문을 가진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 나는 많은 해답을 가진 더 영적인 사람이다.
-나는 죽음과 죽는 것에 두려웠었다. -> 죽는 과정을 통해 나는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편두통의 통증이 내 삶을 지배했다. 나는 약에 의존적이었다. -> 나는 종종 내 편두통을 극복한다. 내가 먹는 유일한 약은
타이레놀뿐이다.
- 나는 낮은 자존감과 싸워야 했다. -> 나는 창조적이고 독립적이고 내 성공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
- 나는 가족멤버들, 친구들과 많은 깨어진 관계를 갖고 있었다. -> 나는 많은 나의 좋은 친구들로부터 많은 기쁨을 얻고 있고 내 부모님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 "내가 누구인가?" 가 직업 선택과 강한 연관이 있었다. -> "내가 누구인가?"는 하나님과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에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 나는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다. -> 내가 무엇을 달성해야하는지 알 필요가 없다.
- 나는 삶의 중압감과 싸우고 있었다. -> 나는 살아야할 이유가 많다. 여전히 중압감은 느끼지만 훨씬 잘 조절한다.
Then Now
I was religious with lots of questions. I am more spiritual and have lots of
answers.
I was terrified of death and dying. My comfort through the dying process will be
knowing the freedom, comfort and JOY that comes with death.
The pain of my migraine headaches controlled my life. I was dependent on
medications. I control my occasional migraines. The only medication I take is
Tylenol.
I struggled with a poor self concept. I am creative, independent and take great
pride in my successes.
I had many broken relationships with family members and one time friends. I gain
a great deal of pleasure from my many good friends and a wonderful relationship
with my parents.
"Who am I?" had a strong connection to career choices. "Who am I?" has a strong
connection to relationships with God, my family and friends.
I needed to know my goals and direction so I could gain a sense of purpose. I
have a sense of purpose. I don't need to know what I am to accomplish.
I struggled with the pressures of living. I have lots to live for. I still feel
pressure, but I handle it better.
몇년 전에 한 친구가 "네게 만일 다시 기회가 있다면, 그 벽 너머로 들어설거야?"라고 물어왔다. 나는 지체없이 "그럼, 분명히 그럴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다시 말했다. "내가 지금 가진 모든 것을 놔두고 갈거야?" 나는 대답했다. "그래 그럴거야" 이것은 내가 내 아이들과 남편과
내 부모님과 내 모든 친구들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나에게 그 기회가 다시 주어지고 또 그 때가 옳다면 놀라운 평안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A few years ago, a friend asked, "If you had a chance again, would you step over
the wall?" Without hesitation I answered, "Yes, definitely." She said, "You
would leave all you have now?" "Yes, I would." I answered. It's not that I want
to leave my children, my husband, my parents and all my friends, but I have come
to really appreciate the chance I was given, and when the time is right, that
overwhelming feeling of peace will be there for me.